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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워너비 前 멤버 채동하,하늘로 떠난 별! 마지막 순간까지 귀에 이어폰!큰 충격이었다~안타깝고 불편한 이유?

스타

by conniepannuzzo 2022. 8. 23.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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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 연예계는 인기연예인 출신들의 사회부적응 문제가 심각지경이다.

 

인기라는 닷 맛을 본 이들은 인기가 사그라든 후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게 되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송가 주변을 배회하며 삶이 황폐화된다고 한다.

 

문제는 그 같은 과거의 인기연예인 수가 너무 엄청나다는 점이다.

 

어린 나이에 인기의 단 맛을 경험한 연예인일 수록 그 폐해는 치명적이라 들었다.

 

우울증을 앓았다는 채동하도 그렇지만 과거 큰 충격을 안겨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채동하는 2000년대 초중반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대중적인 음악으로 전 연령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이끌었던 SG워너비의 전 리더이자, 서브보컬을 맡았었으며, 그룹 탈퇴 후 솔로로서 왕성하게 활동하였던 가수입니다.



유년시절 부모가 이혼해 줄곧 어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재봉일을 하며 생계를 책임졌고 아들을 뒷바라지 했습니다. 여기에 살던 지역이 그린벨트에 묶여있었고 집은 흙으로 지어져서 일어나보면 염소가 문의 창호지를 뜯어먹고 있을 정도로 열악했다고 합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홀 어머니 슬하 즉 불안정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했다면

원초적 외로움이 그의 정신세계 깊은 곳에 뿌리처럼 도사리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6살 때 심실 중격 결손증(VSD)으로 인해 수술을 받는 등 선천적으로 약한 몸 때문에 고생 많던 유년기를 보내야했습니다. 심실 판막에 구멍이 있어서 피가 역류해 숨을 못 쉬는 병입니다. 채동하의 어머니는 아들이 자다가 숨을 멈추면 토닥여서 숨을 틔워주려고 매일 밤을 지새웠다고 합니다. 

그는 이 병으로 군 면제를 받았습니다. 한때 가슴 수술 자국을 콤플렉스로 여겨 흉터 축소 수술을 받기도 했습니다. 의사나 친지들은 천식 환자가 어떻게 그렇게 무대에서 뛰어다니며 노래를 하는지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힘든 유년시절을 보낸 후 2000년 12월, 서울예대 방송연예과 00학번으로 재학 중일 때, 기획사 관계자들과 작곡가들이 찾아와서 재학생들의 실력을 본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근데 그 재학생들 중 가장 노래를 잘 불러 기획사의 명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지패밀리엔터테인먼트에서 약 2년간의 연습 기간을 거친 뒤 2002년 1집 ‘네이쳐(Nature)’를 발표하며 타이틀곡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라는 곡으로 데뷔했습니다. 당시 잘생긴 외모와 가수 조성모와 박효신을 섞은 듯한 가창력으로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 후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소속사가 부도나면서 잠시 침체기를 맞았습니다.

 

SG워너비는 2004년 1월 얼굴 없는 가수로 데뷔, 앨범과 뮤직비디오만으로 정규앨범 한 장에 동시에 여러 곡을 히트시키는 최초의 가수였습니다.   

 

맏형으로 팀의 리더 및 서브(메인)보컬을 맡고있던 채동하는 SG워너비의 얼굴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애절함이 묻어나는 특유의 음색과 세한 감성표현과 고음처리와 외모로 큰 인기를 얻으며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채동하는 4집을 끝으로 2008년 5월 SG워너비를 떠나 홀로서기를 시작합니다. 탈퇴이유에 대해선 당시 그는 연기자와 뮤지컬 배우 등 여러 영역에서 활동하길 원했으나 소속사는 멤버들이 음악 활동에만 전념하기를 원하면서 마찰을 빚었다고 알려졌지만 이는 회사의 언플이였다고 합니다. 

데뷔곡 「Timeless」의 대성공에도 불구하고, 버스를 탈 천원 한장이 없었을 정도의 생활고에 시달려 새벽에 신문과 우유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합니다. 2집때부턴 정산을 받게되어 고대하던 집을 산 얘기가 2007년 8월 1일에 방영한 인간극장에 나옵니다.  대박 히트치고 가요계에 우뚝 선 가수가 돈이 없어서 빵을 못먹고 연습실에 못간다는게 말이 안되는 상황이였습니다.

 

뒤늦게 인터뷰에서 털어놓길, 실제로 채동하는 탈퇴 이후 가수 생활을 그만두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로는 SG워너비 활동시절의 살인적인 스케줄과 더불어 앨범 성적에 대한 부담감에서 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컸기 때문이였다고 합니다. (기획사 대표 김광수의 횡포가 한몫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뮤지컬 무대에 서며 다시 마이크를 잡아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1년6개월의 공백기를 가진 채동하는 2009년 9월 솔로 2집 <에세이>를 발표합니다. 데뷔초기부터 팀 탈퇴 공백기 등 아픈 시간들을 담담히 고백하는 일기형식의 글과 40쪽이 넘는 화보형식의 앨범입니다.   

 

하지만 앨범 발표 연습 중 찾아온 목디스크 증세가 심해지면서 활동을 중단합니다. 많은 공을 들인 2집 앨범 활동은 목디스크에 발목이 잡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음반의 판매량 자체는 나쁘지는 않았으나 작곡가인 조영수가 초대박일 거 같다고 예상한거에 비해 기대에 못 미쳐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목 디스크는 SG워너비 활동때 전국투어를 하다가 공연 도중 부상을 당한게 원인이였습니다.  교통사고로 차가 전복되는 사고를 겪으며 또 한번 다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후 2010년에 접어들며 채동하는 새 미니앨범 출시를 준비했습니다. 해외를 다니며 음악적 영감을 얻어 새 미니앨범 작업에 쏟아 부었습니다. 그해 9월 <바닐라 스카이>를 타이틀로 한 미니앨범을 발표하며 절치부심 끝에 복귀했습니다. 전체 앨범의 프로듀서를 맡고 자작곡도 5곡을 수록했을 만큼 열정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후 채동하는 주로 일본에서 솔로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국내 가수들과 합동으로 한류 콘서트를 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2011년 5월27일 오전 서울 은평구 불광동 자신의 아파트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됩니다. 옷방 행거에 넥타이로 목을 맨 상태였습니다. 사망 다음 날인 5월 27일은 일본 도쿄에서 공연하는 날이이였는데 연락이 안되자 그의 매니저는 전날 밤 채동하와 연락이 닿지 않자 이날 오전 11시쯤 집을 찾았으나 현관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매니저는 119에 신고해서 베란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고, 옷방에서 채동하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발견 당시 휴대전화에 연결된 이어폰을 귀에 꽂은 상태였고 옆에는 의자가 넘어져 있었습니다. 당시 언론보도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왜 이어폰이 꽂아진 상태였었는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경찰은 “채동하가 사망 당시 이어폰을 꽂고 있었습니다. 그 이어폰은 고인의 휴대전화와 연결돼 있었다”며 “발견 당시 휴대전화 전원이 꺼져 있었고, 비밀번호로 잠겨 있어 고인이 사망 직전 음악을 들었는지, 누군가와 통화를 했는지는 아직 확인 불가다”라고 입장을 전했습니다.

 

채동하가 오래전부터 우울증을 앓아 통원치료를 받고 있었다는 매니저의 진술, 식탁 위에서 약봉지가 발견된 점을 들었습니다. 숨지기 4일 전에는 불안감과 불면증 증세를 호소하며 인근 병원을 찾아 8일치 약을 처방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채동하의 우울증에는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있었습니다. 솔로 1집에 이어 7년 만에 발표한 2집 역시 인기를 끌지 못했고, 이로 인해 심적으로 무척 힘들어했다고 지인들은 전했습니다. 국내·일본 활동의 압박감도 상당했습니다. 아마도 솔로 활동 이후 심적 부담이 컸던 것은 아닐지.  

한번이라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대중의 갈채를 경험한 연예인들은 인기가 사라진 뒤 공항상태에 빠진다고 한다.

그래서 인기에 대한 강박관념은 예나지금이나 감수성 예민한 연예인들의 자살로 귀결되는 경우가 너무도 많았다.

진실이 무엇이든 채동하도 그런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삶이 우울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너무도 젊은 나이란 점에서

그의 죽음은 아깝고 또 아깝다.

…………..

채동하의 자살에 영향을 준 원인은

인기회복에 대한 강박관념일수도 있고 돈 문제일 수도 있고 기획사와의 불화 문제일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불편한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생명을 끊는 정신적 허약함이 아닐까!

그 정신적 허약암은 비단 젊은 연예인들만의 책임일까?

혹 어른들의 일그러진 상업주의가 만들어낸 부끄러운 결과물이라면 이제 제발 정신 좀 차리자!!!!!

더 얼마나 많은 젊은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그 심각성을 깨달을 것인가.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를 뒤흔들며 엄청난 파국을 경험한 비디오사건의 백지영은 많은 걸 시사한다.

그 아픔과 슬픔을 가슴을 울리는 노래로 승화시켜 오뚜기 처럼 다시 일어서지 않았는가!  

 

인기 연예인의 우울증은 미래에 대한 방향타를 잃은 방황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고민을 터 놓고 말할 그리고 들어줄 상대가 없기에 생길 가능성이 크다.

너무 일찍 생을 놔버린 채동하.

한때 정상에 올랐던 재능넘치는 젊은이가 자신의 뜻을 다 펴지도 못하고 요절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울 뿐이다.

대범하게 모든 걸 이겨내고 희망을 잃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연예계의 젊은이들만이 나약한 것인가 차가운 디지털세상이 요즘의 젊은이들을 나약하게 만든 것인지!

 

언제나 이런 슬픈 소식을 듣지 않는 세상이 올 것인지.

스타의 자살은 언제나 뒤를 잇는 일부 청소년들의 연쇄자살이라는 따라하기 관행이 존재했기에

행여 이번에도 그 같은 연쇄도미노 현상이 이어질까 마음이 불편하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랴만.

남편과 이별후 외동아들만 바라보고 샆아온 그의 어머니는 이제 어떻게 생을 이어가라는 것인지.

 

그나저나 솔로 독립이후 왜이리 우울한 노래들을 많이 불렀는가!

오늘 그의 1집 수록곡 gloomy sunday이 너무 슬퍼 마음  멍들고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진정 가수는 자신의 노래제목처럼 인생이 따라간다는 속설이 맞는 것인가. 

그가 남긴 우울한 노래를 들으며 그를 간절하게 추억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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