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 (58.대한애국당 사무총장)이 지병으로 별세했다.
여러 정치적인 사안으로 갈등을 겪고 송사에 휘말리면서 정신적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겪어왔고, 이후 2015년 1월경에 폐암 판정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2018년 2월경에는 폐암이 뇌로 전이되어 결국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외로이 힘든 투병 생활을 해 왔다고 전해진다.
고 정미홍 대한애국당 전 사무총장과 30년 가까이 부부의 연을 맺은 남편 팀 트린카에 이데일리에 추모의 글을 전해왔다.
팀 트린카(Timothy E. Trinka) 씨는 25일 이데일리에 A4용지 한 장이 넘는 글을 통해 “그는 그가 대외적으로 비춰진 모습보다 훨씬 많은 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대외적 모습도 그녀의 진심이었고 늘 분명했으며 강력했습니다”라며 “그는 늘 자신의 신념과 국가에 대해 깊게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항상, 항상 옳은 일을 해 왔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면서도 말입니다”라고 기억했다.
팀 트린카는 이어 “정미홍은 가난한자, 장애인, 혜택받지 못한자들을 위해 끊임없이 일했습니다. 그것이 그녀의 위대함 입니다. 그리고 아내와 엄마로서도 그는 금처럼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라며 “정치적 신념이나 이념의 차이와 상관없이 대한민국이 이렇게 위대한 여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이 국가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줍니다. 대한민국은 오늘 큰 별 하나를 잃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트린카씨는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에게 “나의 아내, 나의 사랑이여, 나는 당신의 생각보다도 훨씬 더 당신을 그리워하겠소”라며 말을 맺었다.
또한 정미홍은 과거 희귀 난치병 루푸스를 극복한 사실로도 유명한데 루푸스는 피부, 관절, 혈액과 신장 등 각 기관과 조직에 만성 염증을 일으키는 면역 질환입니다. 정미홍은 15년간 루푸스 투병 생활을 하며 장기간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했고 사망위기도 두 번이나 겪었다고 여러 차례 인터뷰를 통해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정미홍은 국제 결혼을 했습니다. 한국에서 남편 티모시 E 트란카라는 미국인을 처음 만났지요. 정미홍이 국제 결혼을 했기 때문에 정미홍 이혼, 정미홍 재혼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원래 남편과는 국제 단체회원으로 서로 인사를 나눈 사이였다. 그런데 유학을 할 때 내가 위중한 상태로 쓰러져 있을 때에 그가 우연히 안부 전화를 했다. 난 전화기까지 간신히 기어가서 날 좀 구해달라고 했고, 그는 두 시간 넘게 눈길을 달려와 나를 응급실로 데려갔다. 눈을 떠보니 일주일이 흘러 있었다>
<미국은 가족이 아니면 병원 수속이 안되기 때문에 친구였던 남편이 피앙세라고 둘러대 병원에 입원을 시켰다고 하더라. 남편은 나를 극진하게 간호했고, 그의 청혼을 흔쾌히 받았다>
<국제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었지만 난 그의 성실하고 순수한 모습에 감동을 했다. 1년 후 그가 청혼을 했을 때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 지금도 참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결혼하고 20년이 지났지만 그 사람은 하나도 달라진게 없다. 여전히 내게 미안할 만큼 헌신적이고,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다>
정미홍 남편 집안 역시 상당히 부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정미홍이 외부 활동을 큰 제약없이 활발하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남편의 외조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미홍: "(당시 지방 발령으로) 부산 지사 근무 발령이 났는데, 병(루푸스)을 감추고 회사를 다니고 있던 중이었다. 또 막 결혼한 터라 (1992년 결혼) 서울로 병원 다니며 이중 살림하기가 어려워서 생각 끝에 퇴직을 결심했다." 슬하에 입양한 딸 혜나양을 두고 있다.
그리고 KBS 퇴사 직후, 정미홍은 차도를 보이던 루푸스가 재발하여 목숨의 위기를 겪기도 합니다.
정미홍: "(지방 발령이) 억울하다는 생각만 했었어요. 가슴 속이 미움과 원망과 분노로 갈가리 찢어지는 듯했죠. 아마 그게 (루푸스) 재발병의 원인 됐을 거예요."
하지만 정미홍은 남편의 헌신적인 간호와, 스스로의 의지로 병을 극복하게 됩니다.
정미홍: "루푸스로 15년간 3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내 몸을 더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오래 동안 체질에 맞는 음식만 섭취하는 다이어트, 운동, 명상 등 나름 노력을 많이 한 편이다."
정미홍: "그런데 (다이어트, 운동, 명상보다) 병을 극복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병을 가진 사람의 마음 자세라는 것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 자신을 사랑하고, 세상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 부정적 감정, 즉 스트레스, 분노 등을 다스리는 것 등이 치유에 절대적이라고 생각한다."
정미홍: "생사를 넘나들면서 깨달았다. 죽음 앞에서 욕심은 아무 소용이 없으며,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최선을 다하고 기다리는 것뿐이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으면 마음은 충분히 평화로울 수 있다."
결국 KBS 퇴사 이후 정미홍은 죽을 위기를 넘겼고, 이때의 경험이 그녀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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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홍은 1982년부터 1993년까지 KBS 아나운서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알렸습니다 1988 서울올림픽 때는 메인 앵커를 맡기도 했어요. 서울시 처음 홍보담당관, 홍보회사 CEO 등으로 활동했던 정미홍은 그러나 이후 정치에 참여하면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어요. 특히, 2016년 탄핵정국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반대 및 무죄 석방을 주장하면서 태극기 집회에 주도적으로 나서는 등 정치적 색깔을 뚜렷이 했어요.
인기와 명예의 부침을 겪었던 정 전 아나운서가 마지막 남긴 말은 무엇이었을까.
A씨는 "정미홍이 삶을 정리하면서 애국당에서 갈등하셨던 일 등을 안타까워 하였고 내가 병세가 나빠 너무 예민했었다, 다 부질없는 일이었는데라며 관대하라고 여러 번 말씀했다"고 고인의 마지막 말을 공개했어요.
정미홍은 지난 4월 게재한 마지막 SNS 글에서 "돌이켜보면 보람된 세월이었습니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보다 너그럽지 못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동지들, 저와 같이 한 많은 분들, 제가 서운하게 해드린 점이 있다면 너그럽게 생각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어요. 이어 "항상 희망을 품으세요. 희망을 놓지 않고 믿는 바를 위해 최선을 다하면 후회도 없을 것이라 봅니다. 후회 없는 삶은 어떤 두려움도 갖지 않도록 해준다고 한다"고 마지막을 암시하기도 했어요.
KBS전 아나운서였고 극우파의 논객입니다. 아나시절 정치 활동을 할때에는 극우 성향은 아니었는데 변한듯 하고요 많은 인지도가 있는데 아마도 극우파에서는 유명합니다. 이명박 정부때 강경한 발언으로 SNS에서는 좋지 않은쪽으로 유명했는데요
세월호때는 희생자 유가족들을 모욕하느 발언을 해서 비난을 받은바 있습니다.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서 연설하면서 강경 발언도 서슴치 않게 했는데요
박근혜가 파면된 이후 좌편향된 언론을 바로잡겠다며 직접 TNJ 진정방송이라는 인터넷 방송을 설립했어요.
또 가장 놀라웠던 발언은 2013년 5월 채널 A뉴스에서 윤장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미국 순방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아직 수사 중이고 지극히 경범죄로 신고된 사안인데 성폭행새서 그 사람을 목 졸라 죽이기라도 한 분위기" 라며"이게 미친 광기가 아니고 뭔가라고 이야기했다.
덧붙여 정 전아나운서는 당시 방송에서 "평소에 그런일이 있을 때 도망가는 사람이 아니다. 바쁜 일정에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그런 행동을 할 수가 없다"며 윤창중 전 대변인을 두둔하는 발언을 해 온 국민의 공분을 샀던 적이 있다.
일너 정미홍 발언을 들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에 의해 성추행을 직접 당한 당사자에겐 칼로 가슴을 쑤시는 듯한 말 한마디가 아닐까 생각한다. 정미홍 전 아나운서는 정말 이러한 발언에 대해서는 반성을 깊게 해야한다 생각한다.
또한 정미홍 전 아나운서는 속석희 앵커를 폄하하는 발언을 한 적도 있다.
이러한 전미홍 전 아나운서의 발언들에 대해 네티진들은 "네티진들이 정다르크라 하니까 진짜 정다르크인지 아나보다" "이게 독립운동도 아니고 무슨 목숨을 내놓냐" 등의 발언들이 대부분이다.
또 한편으로는 "정다르크 응원하겠습니다. 그래도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말아주세요"라는 그를 염려하는 글도 다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