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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 정윤희 최근 충격 근황! 준재벌 유부남과의 불륜! 가혹한 운명, 잃어버린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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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nniepannuzzo 2023. 5. 2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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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손가락질당한 여배우 정윤희 과거로 돌아가 가혹한 운명을 바꾼다면!

 

70, 80년대에 남자들의 가슴을 뒤흔들었던 미녀여배우들이 유독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초절정미인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은막의 여주인공으로 군림했던 여배우가 있는데요.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전반까지 ‘은막의 요정’으로 불리우며, 남성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던 정윤희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70년대 여배우 정윤희의 특징은 크게 2가지입니다. 하나는 은막의 스타로 화려한 생활을 영위했다는 점과, 두번째는 간통 사건을 일으키고 결혼과 동시에 연예계를 은퇴했다는 점이죠.

당시 간통 사건으로 정윤희는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지만, 여기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습니다.

그리고 연예계를 은퇴한 정윤희는 다시 복귀하지 않았는데, 아마 이때문에 전설로 남을 수 있지 않았나 합니다.


정윤희는 75년도에 영화 ‘욕망’으로 데뷔했는데, 데뷔 당시에도 눈에 띄는 예쁜 얼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큰주목을 받았답니다.

데뷔 초기인 76년도에 영화 ‘청춘극장’의 여주인공으로 스카웃됐고, 동양방송의 ‘쇼쇼쇼’프로그램의 MC에 발탁되었던 것도 정윤희의 아기자기하게 예쁜 얼굴 때문이었지요.


 1977년도 정윤희가 출연한 드라마 ‘청실홍실’이 큰 인기를 끌면서, 정윤희는 이때부터 스타덤에 올라 최고미녀배우로 이름을 떨치면서, 각종 드라마와 영화, CF를 오가면서 활발한 연예활동을 펼쳐나갑니다.

TBC드라마 ‘청실홍실’은 정윤희와 장미희가 함께 출연해서, 연적관계를 형성하며 열띤 연기력을 뽐냈는데, 70%라는 역대 최고의 시청율을 기록했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답니다.


또한 정윤희는 당시 유행했던 호스티스영화에도 출연했는데, 특히 78년도에 ‘77번아가씨’에 출연,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서 영화는 흥행에 크게 성공하였고, 정윤희는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각인되면서, 대중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끌게 된답니다.

 정윤희는 그동안 연기력이 부족한 얼굴만 예쁜 여배우로쯤으로 여겨졌었는데, 두편의 영화 ‘꽃순이를 아시나요’ ‘나는 77번 아가씨’를 통해서, 연기력을 인정받고 톱스타로 올라서게 된답니다.


그리고 정윤희는 1980년도 영화 ‘뻐꾸기는 밤에도 우는가’에 출연 절정의 매력을 과시하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기여배우로 자리메김하게 되었는데, 이영화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게 된답니다.

그리고 정윤희는 81년 영화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로 또다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는데요.


 드디어 정윤희는 얼굴만 예쁜 여배우가 아니라, 미모와 연기력을 동시에 갖춘 최고의 여배우로 공인받게 되었지요.

정윤희는 80년 전반까지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큰 인기를 누렸는데요.


정윤희의 미모는 일본에까지 알려졌는데, 일본의 각종 매스컴에서는 정윤희를 동양최고의 미녀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합니다.

정윤희는 70년 후반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외국여배우로 선정되어, 일본 항공달력의 모델로 선정되었답니다.

 그리고 매우 이례적으로 일본의 도쿄가요제에 시상자로 선정되어, 시상식에 서게된답니다. 여기서 영화 ‘러브스토리’의 여주인공 과 함께 시상자무대에 올랐답니다. 일본에서는 정윤희를 허리우드여배우와 동격으로 대우했던 것이지요.



또한 한국에서 상당기간 거주하면서 영화 촬영을 했던 성룡은 스스로 정윤희의 열렬한 팬을 자청했고, 자신의 이상형으로 정윤희를 꼽습니다. 이런 성룡의 행동으로 두 사람 사이에 스캔들이 나기도 했죠.

그리고 홍콩최고의 스타 성룡이 정윤희의 미모에 홀딱 반했다고 하며, 정윤희를 짝사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연기자로 점점 성장하는 정윤희였는데, 사실 그녀 주위에는 루머가 많았습니다. 결혼도 하기 전에 아이가 있다는 것과 술집 작부 출신이라는 소문이었죠.



그러다가 1984년 정윤희는 정말로 한국 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킵니다. 바로 조규영과의 간통 사건이었죠.

은막의 최고의 스타로서 절정의 시기에 정윤희는 엄청난 스캔들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요. 정윤희가 당시 유부남이었던 조규영회장과 간통스캔들이 터졌던 겁니다.

당시 조규영은 유부남이었습니다(1982년에 부인과 결혼했고, 박모씨와의 사이에서 두살된 딸과 4개월된 아들이 있었음).


 당시 매스컴에서는 인기절정의 미녀여배우와 중견 건설회사 회장의 부적절한 만남이라고 크게 보도하기도 했던 사건이랍니다.

당시의 언론에서는 톱여배우와 중년의 유부남 재력가의 불륜이라고 두사람의 관계를 비판하는 시각이 강했는데요.


그런데 1984년 8월 18일 새벽 3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정윤희의 집)에서 두 사람이 잠을 자다가 조규영 부인 박모씨와 처가 식구들의 습격을 받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경찰에 의해서 현장에서 연행되었고, 구속됩니다.

그런데 당시 조규영은 아내 박모씨와 별거를 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아내와의 불화때문에 이혼을 고려하고 있었죠.

조규영: "윤희와는 최근에 알게 된 사이다. 아내와의 이혼에 윤희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박씨: "지난해(1983년) 4월부터 둘이 관계를 맺어왔다. 일본 동경과 괌 등을 함께 여행했으며, 귀국해서도 관계를 맺었다. 그에 따른 사진 등의 증거 자료가 있다."
박모씨는 이런 내용으로 고소장을 작성해서 제출합니다. 즉, 자기 결혼의 결정적인 파탄은 '정윤희'와 '바람핀 남편'때문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조규영은 이렇게 반박합니다.

조규영: "지난해(1983년) 10월 부인과의 불화로 집을 나와 친구집과 호텔에서 전전하다 지난해 12월 친지의 소개로 정윤희를 알게 되었다."

이렇게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오가던 상황이었는데, 당시 대중들은 정윤희가 가정을 파괴했다는 불륜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당시  이들의 구속 여부를 묻거나, 이들에게 욕을 하기 위한 사람들의 전화로, 경찰서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죠.



조규영: "윤희와의 관계때문에 가정불화가 생긴 것이 아니라, 집안에서 이혼 얘기가 나오는 등 가정문제가 복잡하던 중 윤희를 만나 친하게 지내게 된 것이다. 당초 그 사람(전처)는 고소하기 전에 7억원의 위자료를 요구했다가 합의가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고소한 것이다."

그리고 조규영의 설명처럼, 절대 합의를 하지 않겠다던 박모씨는 곧바로 합의를 하고, 고소를 취하합니다(정윤희 조규영은 5일만에 유치장을 나오게 됨).

당시 합의 조건: 박모씨(조규영 전처 전부인)가 두살난 딸과 4개월 된 아들등 두 자녀를 맡아기르는 조건으로 양육비와 위자료조로 1억원을 6개월내에 3회분할로 받기로 합의하고, 이중 3천만원을 우선 23일 저녁에 받음


조규영회장 전부인의 간통죄고소 등으로 두사람은 유치장에 구금되는 등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결국 정윤희와 조규영회장은 모든 시련을 극복하고, 1984년 전격 결혼에 성공합니다.

당시 세간에서는 톱스타 정윤희가 남의 가정을 파괴했다는 비난을 퍼붓기도 했지만, 정윤희는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 톱스타의 지위와 인기를 모두 다 내던지고 비록 5일간이지만 유치장에 들어가는 수모를 감수해가면서 결국 자신의 사랑을 쟁취해냈답니다.


 당시 최고의 인기여배우로서, 남부러울 것이 없었던 정윤희가 도대체 왜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을까요? 그것은 정윤희가 진실로 조규영회장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답니다.

그리고 스캔들이 터진 후에 정윤희는 방송국에서 출연금지처분을 받게되었고, 정윤희의 전성시대는 종말을 고하게 된답니다. 


 처음에는 불륜이라는 맹렬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정윤희는 조규영회장과 84년도에 결혼에 성공해서 연예계에서 완전 은퇴했으며, 정윤희는 조규영의 1남 1녀의 자녀들을 키우면서, 30년 넘게 금슬좋은 부부로 잘살고 있답니다.

처음에는 비난받는 스캔들로 시작된 사랑이었지만, 가장 오랫동안 금슬좋고 모범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정윤희는 정말 대단한 여성으로 느껴진답니다.



 결혼후에 정윤희는 잠깐 연예계에 컴백한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는데, 시댁식구의 완강한 반대의견 때문에, 정윤희의 컴백은 무산되고 맙니다.

정윤희는 조규영와 전처사이의 자식 1남1녀를 키웠는데, 정윤희가 직접 낳은 아들이 하나 있었지요.


정윤희가 조규영과의 사이에 낳은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은 미국으로 유학생활을 하던 도중, 2011년 11월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했답니다.



그당시 정윤희의 아들은 23세로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도중에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켰고, 병원으로 이송된 후에 곧바로 사망했다고 하네요.

나중에 가족들의 요청으로 아들에 대한 정밀부검이 이뤄졌고, 정윤희아들은 자살이나 타살이 아닌, 약물중독에 의한 사망으로 밝혀졌답니다.




은퇴 이후에 약 30년을 평범하게 살았고, 삶의 굴곡이 거의 없었던 드문 여배우 중의 한명인데, 말년에 이렇게 큰 불행이 그녀에게 닥치네요.

그녀의 유일한 피붙이자식이 죽었고, 또한 남편 조규영이 운영하는 회사가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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